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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동지도 신뢰도 끊어진 통합진보당의 참화 / 유창선(시사평론가)

  [기고] 동지도 신뢰도 끊어진 통합진보당의 참화 / 유창선(시사평론가)
  글쓴이 : 정현익 조회수 : 884   |   추천수 : 0   |   등록일 : 2012-05-25 15:04  

여론의 지형에서 9대1 정도의 게임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둘 중의 하나이다. 여론의 대세에 맞추어 남들 하는 대로 그저 말 한마디 보태든가, 아니면 여론의 돌팔매를 덩달아 맞을지 모르는 위험한 발언을 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는 이 상황에서 후자를 택한다. 그렇다고 나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생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이제는 서로간의 무자비한 권력투쟁으로 변질되어버린 통합진보당의 진흙탕 싸움 앞에서 굳이 편을 들 세력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다만 오로지 진실을 알고자 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나의 이성적 사유가 제기하는 합리적 의심들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말할 뿐이다.

 

 

먼저 불필요한 소모적 논란을 방지하기 위해 두 가지 대전제를 분명히 하자. 첫째, 정당 내부에서의 폭력행위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아무리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하고 그래서 분격한 상황이라 해도 공당의 회의석상에서 폭력이 행사된 일은 누구의 이해도 구하기 어렵다. 중앙위원회에서의 폭력행사는 그 억울함의 호소를 들어보려 했던 사람들의 귀마저도 닫아버리게 만든 결정적 패착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통합진보당 사태의 핵심으로 폭력사태를 떠올리게 되었다. 잘못한 일이다.

둘째, 당내 경선에서 결과를 조작하기 위한 부정행위가 있었다면 그 또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로 그 같은 목적의 부정행위가 있었는지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따라야 하고, 만약 그런 범죄행위가 확인된다면 당사자들에 대해서는 진보정당에서 영구히 추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형사적 책임까지 물어야 마땅하다. 이 두 가지는 결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달리 해석할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거부해서는 안 될 대전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현재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의 최대 쟁점은 이석기·김재연 당선자의 사퇴 문제가 되었다. 당초 경선부정 문제에 출발했던 논란은 여러 과정을 거치며 이 지점에 도달했다. 혁신비대위는 두 당선자의 사퇴를 당혁신의 최우선적 과제로 삼고 있으며, 대부분의 언론 또한 두 당선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그런데 이 결정적 대목에서 의문이 든다. 두 당선자의 사퇴 여부가 이번 사태의 최대 쟁점이 되고 있는 상황은 과연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것인가. 그 문제가 ‘총체적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는지에 대한 확인을 하는 것보다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논리적 이유는 무엇인가. 국민에게 공동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일단 여론의 불을 끄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면 비겁한 일이다. 정당에게 있어서 ‘국민의 눈높이’라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때로는 감히 여론에까지도 맞서며 진실을 지키고 당을 지켜온 것이 진보정당의 역사였다.

 

두 당선자가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상황에 견주어, 정작 재앙의 출발점이었던 ‘총체적 부정선거’ 여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라는 과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상태이다. 지난 10일 개최된 통합진보당 전국 운영위에서는 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부실사태를 추가 조사할 진상조사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혁신비대위가 출범했지만 두 당선자의 사퇴문제, 폭력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의 뒷전으로 밀려버린 후순위 과제가 되어버린 모습이다. 의제의 우선순위가 합리적이지 못한다는 판단이 든다. 갈등의 출발점이 되었고, 공동책임론의 근거가 되었던 부정경선 진상조사 결과에 대한 상반된 입장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추가조사 혹은 재조사를 통한 사실관계의 검증과 확인이 필수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더 조사를 한다고 해도 모두가 인정하는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조사과정에서도 상이한 해석과 판단이 분쟁거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 해도 이 문제를 피해가서는 갈등을 근원적으로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다 끝난 얘기라고 할지도 모른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다 부정인 것으로 결론이 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정치의 영역에서는 국민의 눈높이가 그렇게 지고지선의 것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성적 사유의 영역에서는 그 결론조차도 합리적 의심의 성역이 될 이유는 없다. 논리적 반론이 제기되고 귀기울일만한 소명이 이어지는데도 그것을 묵살하고 덮어버린다면 진보답지 못한 일이다.

사실 오늘의 재앙은 4.11 총선을 앞둔 졸속 통합의 과정에서 이미 잉태된 것이다. 통합진보당에는 서로 다른 활동배경과 정치문화를 가진 여러 세력이 참여하여 손을 잡았다. 거기에는 진보정당의 외연을 확장한다는 연대의 의미가 있었지만, 이질적 세력간 가치와 문화의 충돌위험이 언제나 존재하고 있었다. 이번에 터져나온 부정경선 논란도 그런 배경와 무관하지 않다.

 

이번 갈등의 스토리를 거칠게 압축해보면 이런 것 아니겠는가. 민주노동당을 해왔던 당원들은 지난 13년 동안 그렇게 투표를 해왔다. 노조 사무실에서 같은 PC를 사용해서 줄지어 투표를 했고, 때로는 투표하러 가는 동료에게 자신도 아무개를 대신 찍어달라고 부탁했으며, 가족이 함께 당원일 수 있는 것이 자랑스러워 권영길 할아버지를 너무 좋아했다는 5살 짜리 아이를 당원으로 가입시켰다. 거기에 나쁜 부정의 의도는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그들 사이에서는 아무런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말이 언론에 등장했다. 앞의 경우들은 IP 중복, 대리투표의 사례로 제시되거나 보도되었다. 하루아침에 부정선거의 원흉이 되어버린 당원들은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을 하다가 통합에 참여한 당원들은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 세상에 그런 식으로 투표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선거의 규정과 법을 위반했다면 그것이 곧 부정인데, 국민의 눈높이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잘못과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을 납득할 수 없었다. 결국 절차적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무시하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놓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비쳐졌던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단상을 점거했고 폭력까지 휘두르지 않았던가.

 

이 갈등에는 물론 여러 측면이 존재하지만, 근본적인 뿌리를 추적해보면 결국 정치문화의 차이가 낳은 충돌의 측면이 강하다. 현장 기반의 전통적 진보정당을 해온 당원들과, 시민 기반의 자유주의적 성향의 정당을 해온 당원들 사이의 문화적 차이는 서로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럴 때 역지사지의 정신이라도 있어야했지만, 이들에게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었다. 외부인인 나의 눈에는 양쪽의 입장이 이해되는 상황이었건만, 정작 내부인들 사이에서는 굳이 이해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다.

 

자기들끼리의 투표를 어떻게 해도 별 문제가 아니었다는 관행의 논리는 결코 자랑일 수 없다. 이 투명한 SNS 시대의 진보정당이 그렇게 전근대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한번 깨지고 다시 태어나야 할 낙후된 질서였다. 그러나 지금 이런 식으로 서로가 깨고 깨지는 것은 모두에게 상처가 너무 크다. 바다 한가운데서 작은 배에 탄 사람들이 치고받으며 싸우면 그 배는 가라앉게 되어있다. 그 배에 탔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애당초 이렇게까지 재앙적 상황으로 치달을 일은 아니었다. 진보정당을 같이하는 ‘동지’로서의 최소한의 신뢰가 있었던들, ‘총체적 부정선거’라는 대국민선언을 하기 이전에 철저한 진상확인과 그에 따른 합당한 책임을 지는 자정의 길이 있을 수 있었다. 다시는 그런 잘못된 ‘관행’이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데 방점을 찍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신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정파적 논리에 따른 제로섬 게임이 펼쳐졌으며 상황은 여기까지 와버렸다. 그런 점에서 작금의 갈등은 진보정치세력의 정치력 부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장면이기도 하다. 정치력에 대한 주문이 국민에게 숨길 것 숨기며 담합해서 적당히 덮으라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애당초 이렇게까지 진보정당을 거덜 낼 일이 아닌 것을 가지고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몰고 온 진보정치세력의 정치적 무능을 탓하는 것이다. 정당, 그것도 진보정당 내부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검찰도 아니요 여론도 아니요, 결국 진정성에 입각한 세력 간의 소통이요 정치이다.

 

서로가 도저히 당을 같이할 수 없는 사이라면, 그것을 어리석게도 이제야 깨달았다면, 차라리 빨리 재산분할하고 결별하는 길을 찾아라. 그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당을 같이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면 공존과 통합의 정신을 버려서는 안된다.

 

검찰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서 당의 심장이라는 당원명부를 가져갔다. 이제 검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통합진보당을 초토화시킬 태세이다. 분열되어 있는 진보정당은 권력에게 더할 나위없는 먹잇감이 될 수 있다. 그 앞에서 신당권파는 무엇이고 구당권파는 또한 무엇이겠는가. 요즘 SNS에는 주변과 전화통화를 하면 ‘너는 어느 파냐’는 질문에 시달린다는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호소가 자주 눈에 띈다. 정파만 남고 사람들 사이의 신뢰와 의리는 끊어졌다. 진보정당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혁신은 이 단절을 다시 잇는데서 시작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다른 정당이 아니라, 사람을 말하던 진보정당이기 때문이다.

 

<진보정치 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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