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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론-항일독립운동 3대 지도자의 비교

  보론-항일독립운동 3대 지도자의 비교
  글쓴이 : 주동욱 조회수 : 1929   |   추천수 : 0   |   등록일 : 2012-03-30 11:45  
 

항일독립운동 방략에 있어 특히 이들 세 명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노선은 성격이나 지도력의 차이가 좀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이승만은 가장 권위적인 인물로 한성정부의 ‘집정관총재’, 동지회의 ‘영원한 총재’ 등에서 보듯이 영속적인 권력을 추구했다. 또 당파 싸움에서 반대편에게 무자비했고, 추종자들에게도 관대하지 못했다. 1910-1920년대 이승만의 측근으로, 박용만을 축출하는데 앞장섰던 민찬호 ․ 홍한식 ․ 박상하 등이, 1940년대 정반대편에서 이승만을 공격한 데는 이승만의 이러한 퍼스낼리티가 크게 작용했다.


안창호는 타고난 지도자형이라기 보다는 실무적 총무형을 자처했다. 흥사단의 무실역행처럼 스스로 노동하면서 조직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한편 안창호의 성격은 임시정부 시절 내무총판에서 노동국총판으로 떨어졌을 때 잘 드러났다. 안창호는 이때도 임정의 존속을 위해 이승만의 대통령 재임을 인정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그의 우유부단함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명화는 안창호에 대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전략 ․ 전술에 능한 운동가라기보다는 도덕적 신념과 정의를 믿고 이에 따라 사고하며 행동하는 유형이었다”라고 보고 있다.


한편 박용만은 타고난 군인이었고 선이 굵은 남자였다. 재미한인들에게 최초로 군사교육을 시키고, 가는 곳마다 무장투쟁노선을 관철시켰다. 한때 이승만을 후원했지만 이승만의 배반과 작은 승부에 일일이 맞서지 않았다. 외교노선을 내세우며 이끌던 임시정부를 과감히 거부하고, 북경에서 신채호 등과 함께 북경군사통일위원회를 이끌면서 정면으로 이승만과 맞섰다.


                                              

                                                                                                        - 정병준의 <우남 이승만 연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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