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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후배들이 보는 신흥대학, 신흥무관학교(2)

  <펌> 후배들이 보는 신흥대학, 신흥무관학교(2)
  글쓴이 : 다물 조회수 : 3719   |   추천수 : 0   |   등록일 : 2013-04-15 15:01  

                                第2章 慶熙大의 꿈(理想)

 

경희대학교. 인터넷 백과사전에 검색해보면 그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 1949년 배영대학관(培英大學館)과 신흥(新興)전문학교를 합병하여 신흥초급대학으로 설립하였다. 교훈은 '학원의 민주화, 사상의 민주화, 생활의 민주화'이다. 6·25전쟁으로 경영이 악화되자 1951년 조영식(趙永植)이 인수한 후 4년제 단과대학으로 개편하여 교명을 신흥대학으로 개칭하였고, 1953년 현 교지를 확보하였다. 1955년 문리과대학·법과대학·정경대학·체육대학의 4개 단과대학을 가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면서 고황재단으로 재단명칭을 바꿨다. 1958년 대학원 박사과정을 설치하고, 1960년 경희대학교로 개칭하였다. *

 

사실 그 자체를 말하고는 있지만 경희대의 참 모습을 전부 담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거론하는 이유는 위와 같은 설명글에는 표현되지 못한 이야기가 경희대가 꿈꾸는 이상(理想)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위의 경희대학교 약력을 보면 그 시작은 신흥전문학교이다. 신흥(新興)이라는 명칭은 어째서인지 귀에 많이 익지 않은가? 그렇다. 신흥이라는 명칭이 귀에 익은 이유는 일제강점기인 식민지시대에 간도지역에서 독립군을 양성하던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한국근현대사 시간에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에 설립되어 1920년 간도참변 등의 일련의 일제 탄압으로 인하여 폐교될 때까지 독립군 2100여명을 양성한 독립의 열망이 가득했던 애국단체였다. 이 학교는 독립운동가 이시영, 이회영 등의 노력으로 건립되어 1920년에 폐교하게 되었지만 광복 후인 1947년 이시영 선생은 신흥무관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이을 신흥전문학원(新興專門學院)을 설립하여 그 뜻을 계승하였다. 이후 1949년에는 신흥초급대학(新興初級大學)으로 승격되었으나 6.25의 전란이라는 악재와 운영을 둘러싼 재단 내의 분열을 계기로 조영식 박사가 재단을 인수하여 국가존립의 위기 속에서도 신흥초급대학을 지켜냈다. 이후 조영식 박사는 1960년에 교명을 경희대학교(慶熙大學敎)로 개명하여 그를 기점으로 경희의 공식적인 첫걸음을 선포하였다.

 

경희대학교가 성립되기까지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있었고 교명이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상기해야할 점은, 신흥무관학교를 이어 신흥초급대학으로 그리고 경희대학교로 그 역사와 전통이 이어졌으며 그 과정이 곧 민족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같이한 민족의 역사 그 자체라는 것이다. 신흥무관학교는 당초 민생(民生), 교육(敎育)의 기치를 내건 독립군양성기관이었으며 광복 후에도 민생과 교육이라는 일관된 뜻 아래 신흥전문학원(학관)을 건립하였다. 이후 그를 잇는 경희대학교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이념의 구현을 통한 문화세계(文化世界)의 창조(創造)’라는 기치 아래 오늘날까지 그 꿈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표현이야 다르지만 지향하는 그 본질은 줄곧 ‘창조적 인류애’를 통한 이상 사회의 건립이라는 점에서 1911년부터 오늘날 2010년까지 계승되고 있다.

 

이렇듯, 어느 순간 경희대학교가 뚝딱 만들어 진 것이 아니고, 경희대의 꿈 ‘문화세계의 창조’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억압 속에서 문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전쟁의 포화 속에서 평화, 공존의 중요성을 깨닫고, 자유 속에서 창조를 탐구하니 오늘날의 경희가 있게 된 것이다. 실용학문만을 중시하는 대학풍조 속에서도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이며, 경쟁만을 부추기는 사회 속에서도 공존과 협력을 가르치는 경희대학교는 오늘, 지금 현재까지도 ‘창조적 인류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하여 노력 중이다.

 

혹자들은 말한다. 대학입학시험을 통해 자신의 점수에 따라 입학한, 즉 환경적 요인에 의해 선택이 강요된, 우연히 인연이 닿게 된 대학에 쓸데없는 자존심을 갖는 것은 헛된 자아도취 아니냐고. 신입생 시절에는 그 조소에 대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단호히 말할 수 있다. 알면 알수록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함께하면 함께할수록 멋진 대학이라는 것을 자부심을 갖고 말할 수 있다. 1911년부터 민족과 함께 웃고 울며 오늘날까지 이어져온 경희대학교의 일원이 되어 그 미래를 써내려간다는 점에 대하여 자긍심을 갖는 것 그 나름대로 괜찮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출처] 경희대학교 이야기, 제2장 경희대의 꿈(理想)|작성자 달빛물감



다물       2013-04-15 15:05
범생이 모교 후배가 쓴 글인 듯. 이 정도라도 생각하니 훌륭하네.....
선배는 학교다닐 때 아무 것도 몰랐는데, 관심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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